편집 : 2013.4.23 화 20:21
> 뉴스 > 연재 | 지구촌 내 이웃
     
" 태국 경찰은 내 친구 "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요즘 네이버
2002년 08월 07일 (수) 03:05:00 이혜승 tangolee@hotmail.com
   
  ▲ 방콕 외곽의 도로 경찰. 태국 경찰들은 모두 꽊 끼는 제복을 입어 배가 튀어나와 보인다. ⓒ 이혜승  
 
태국 경찰의 개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제복이다.
경찰의 유니폼이 너무나 착 달라붙기 때문에 포동포동한 배가 강조되어 보인다. 마른 경찰인 경우라도 워낙 졸라 매는 탓에 없는 배도 튀어나오는 효과가 난다.

태국 사람들은 그래서 경찰의 터질듯한 배와 복장을 탐욕, 비리와 빗대어 말하기도 한단다. 그런 내막을 잘 모르는 외국 사람들에게도 태국 경찰의 불거진 배는 이상하거나 우습게 보인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잘 웃는 태국인들의 친절함을 대변한 것은 바로 희한한 유니폼의 주인공인 경찰들이었다.

나의 첫번째 태국 '친구'는 방콕의 도로 경찰로, 그의 이름은 누옴이다. 태국 여행 4일째 되던 날 그를 만났다. 나는 이날 오전 훨람퐁 역에서 오후 7시 40분 발 북부 치앙마이행 기차표를 샀다.

오후에는 므앙보란(고대 도시)이라는 방콕 근처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흔히 소인국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태국 전역의 특징 있는 건축물들을 그대로 모방, 축소해서 지어놓은 공원이다. 자전거를 빌려서 약 15km의 태국 ‘전역’을 세시간 반 동안 답사하고 맥주를 들이킨 후 이곳을 나선 것은 오후 네 시였다. 므앙보란에서 방콕까지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리므로 기차 시간까지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태국은 나의 계산에 호락호락 응하지 않았다. 방콕에 다녀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곳의 교통 체증은 한국에서 고속도로를 꽉 메운 귀성길 차량들의 속도와 흡사하다. 방콕까지는 제대로 오던 차가 도시의 경계를 넘어서자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던 차는 급기야 30분 동안 멈추어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6시 30분, 기차 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도로는 아예 주차장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 방콕의 도로 경찰 누옴. ⓒ 이혜승  
 
속이 타서 1리터의 물을 다 마셔 버리고 지도를 펴 들었다. 지리는 잘 모르지만 짐이 있는 카오산 로드까지는 멀지 않은 듯싶었다.

그래서 운전사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내렸다. 바로 눈앞에 경찰 초소가 있었다. 울그락불그락해진 내 얼굴을 보고도 웃음을 띠는 그 경찰은 카오산 로드까지 걸어서 15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15분 동안, 걸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달렸지만 카오산 로드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귀한 시간과 기차 요금까지 한꺼번에 날려버리게 만든 방콕의 교통 체증을 증오하며 계속 달렸다. 몸은 끈적끈적하고 차에서 내뿜는 매연들로 숨은 더더욱 막혀왔다.

그때 또 다른 경찰 초소를 발견했다. 카오산 로드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이번 경찰은 약 40분이 걸린다고 대답한다. '이런, 낭패가….' 기차는 7시 40분에 떠나는데 그때 시각은 벌써 6시 45분, 나는 경찰에게 대체 이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근심과 짜증이 골고루 섞인 표정을 지어 보이며 볼멘 소리를 했다. 그러자 이 경찰은 무척 안타까워하며 뜻밖의 방법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누옴은 선뜻 자기 오토바이 뒷자리를 가리켰다. 머리털 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누옴은 도로 경찰의 특권을 ‘활용’했다. 교통 법규를 위반하여 꽉 막힌 도로를 뚫는 마술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1시간 30분 동안 버스 안에서 발만 동동 거리던 나를 불과 15분만에 카오산 로드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순간 누옴의 포동 포동한 얼굴과 튀어나온 배는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누옴의 친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훨람퐁 기차역까지도 밀릴 것이라면서 그는 또 다시 신나는 승차의 기회를 내게 주었다. 빨리 달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서는 방콕의 매연조차 향기로 느껴졌다. 동시에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감 속에서 이 가난한 배낭 여행자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스카프에 걸려 죽었다는 이사도라 덩컨의 '낭만적인' 최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휠람퐁 기차역. 누옴과 필자. ⓒ 이혜승  
 
과장된 기쁨과 궁상스런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훨람퐁 역에 도착했다. 7시 20분. 태국에 대해 가졌던 짜증과 미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나는 만약 보행자였더라면 분명히 증오하고도 남았을 이 ‘폭주’ 경찰의 ‘도덕성’을 찬양했고 태국 경찰은 내 친구라고 대번에 단정지었다.

기차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누옴과 나는 전화번호를 나눴다. 누옴은 내가 북부에 가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앞으로 6일 후면 스님이 된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어머니를 위해 절에 들어가는 전통이 있다고 하는데 누옴이 바로 그 경우였다. 스님이 되는 기간은 일주일에서 삼개월로 직장마다 허가해 주는 기간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전까지 방콕에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여행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 있는 법. 누옴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냥 전화만으로 고마움과 아쉬움을 전했다.

두번째 경찰을 만난 것은 태국 북부의 치앙라이에서였다. 저녁 8시쯤 수코타이(중부의 역사 도시)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알아 보기 위해서 터미널로 갔다. 수코타이행 버스 시간은 정확하게 쓰여 있었는데 문제는 그 옆에 쓰인 태국어의 뜻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마침 경찰 한 명이 지나가길래 물어 보았다. 이 경찰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면서 퇴근하는 참인데 나를 숙소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역시, 나의 믿음은 지나치지 않았어. 태국 경찰은 내 친구야' 하는 정리를 속으로 되뇌이며 지친 다리를 위해 얼른 승락했다.

태국 경찰들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컸다.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관광객들에겐 그렇다. 또 모든 관광객들에게 친절하지 않다면 적어도 내게는 무척이나 친근했다. 라에한 사엔란 이라는 이름의 이 경찰은 내 숙소로 가는 도중 맥주나 한잔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 치앙마이 버스 터미널의 경찰 라에한 사엔란. ⓒ 이혜승  
 
라에한은 아마도 그 어두운 밤 외롭게 여행하는 한국 여자가 홀로 길을 가다, 혹은 불한당 같은 놈들과 유흥업소에 같이 가서 겪을 수도 있는 불미스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나는 신분이 확실한 경찰과 바에 가는 일은 보험든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라에한은 태국 전통 음악과 춤이 있는 근사한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붉은 조명을 받으며 축축 늘어진 버니언 트리와 맥주, 태국 춤과 음악은 눅눅한 밤을 시원하게 해주는 이국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태국 맥주 싱가를 서너 병씩 마셨다. 그는 나의 취미가 춤이라는 것을 듣고 눈을 반짝이며 나이트 클럽에 가자고 말했다.

물론 그의 의도는 한번 더 강조컨대 나이트 클럽 같은 곳에서 내게 닥칠 위험을 막아주고자 한 것이리라. 그런 친절을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관광객과 태국 경찰의 우정은 나이트 클럽에서도 이어졌다. 태국에서는 유일하게 갔던 나이트 클럽이었다. 젊은이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들은 클럽 바깥에 일렬로 주차되어 있었다.

젊은 남녀들은 비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술을 마시며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웅성거림, 알코올과 춤으로 태국의 밤은 뜨겁게 달아 올랐다. 라에한과 나는 얼음이 섞인 맥주로 그 열기를 식히며 새벽 한시까지 놀았다. 매너 좋은 이 경찰은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반복했다.

비밧은 또 다른 경찰 친구다. 비밧을 처음 만난 곳은 치앙마이에서 팡이라는 마을까지 가는 버스에서였다. '팡'은 마약 제조와 거래가 횡행하는 북부 도시다. 직업을 물었을 때 비밧은 자신을 CIA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믿지 않았기에 "당신이 CIA이면 나는 KGB다"라고 받아쳤다.

하지만 믿기 어려운 대답은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집요하게 캐묻는 나의 질문에 비밧은 자신이 마약 특수 경찰이라고 말했다. 비밧은 자신의 업무가 마약 생산, 거래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전화를 도청하여 매일 오전, 오후마다 태국과 미국에 있는 마약 경찰 본부에 그 기록을 보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말하기를 꺼리며 내게도 비밀을 당부했다. 나는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혹여 진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그가 자신을 마약 비밀 경찰이라고 소개한 것은 최소한 ‘마약’이 북부 도시의 ‘화두’임을 알려주는 증거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한다.(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의 사진을 공개할 수 없다. 만약 그가 진짜 경찰이라면 마약 범죄자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거짓이라면 그는 비밀 경찰 사칭죄로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비밧도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업무 이후의 시간, 그리고 귀중한 하루의 휴가를 주저없이 가냘픈(?) 관광객에게 바쳤다. 그는 내가 버스 옆자리에 앉았었다는 그 인연 하나만으로 내게 점심,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비밧은 또 태국 사람들이 얼마나 노래에 열성적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태국 사람들은 집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하고 휴일에는 친구들을 불러서 논다고 한다. 하지만 비밧과 나는 동네의 소박한 가라오케를 찾아갔다. 그는 몇몇 태국 발라드를 불렀다. 콧소리가 도드라지는 태국 노래는 홍콩 발라드나 트로트와 비슷하게 들렸는데 대부분 센티멘털한 느낌을 주었다. 비밧의 영어는 서툴렀지만 팝송은 썩 잘 불렀다. 매일 저녁 기타를 치면서 영어 노래를 즐겨 부른 덕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비밧은 '스틸러빙유’나 ‘홀리데이’ 같은 노래에 태국 특유의 콧소리까지 섞어가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밤 늦도록 노래를 하고 다음날 근무를 위해서 비밧은 돌아갔다. 그도 다른 경찰들처럼 깊은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다시 돌아오라는 초대를 잊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공중전화로 그에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는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데 한 경찰이 내게 뛰어 왔다. 어떤 사람이 내게 공중 전화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에서는 가끔 봤지만 태국에서 공중 전화로 전화 받는 서비스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곳 통신 사정으로 봐서 별로 그럴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달려가 전화를 받아보니 비밧이었다. 그는 마치 내가 그의 오랜 친구이기나 한 것처럼 나의 떠남을 서운해 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난 후에도 비밧은 몇번이나 전화를 해서 나의 안부를 물었다.

배가 튀어나온 태국 경찰들은 여러 면에서 친절하고 따뜻했다. 떠나오는 날까지 방콕의 어떤 경찰들은 내게 주연을 베풀고 싶어 했다. 그들이 '흑심'을 품었든, 경찰관 특유의 직업 의식을 보여주었든, 아니면 인간적인 교제를 원했든 태국 경찰이 내 친구라는 사실 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혜승의 다른기사 보기  
ⓒ 지오리포트(http://www.georeport.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방콕 외곽의 도로 경찰. 태국 경찰들은 모두 꽊 끼는 제복을 입어 배가 튀어나와 보인다. ⓒ 이혜승

방콕의 도로 경찰 누옴. ⓒ 이혜승

휠람퐁 기차역. 누옴과 필자. ⓒ 이혜승

치앙마이 버스 터미널의 경찰 라에한 사엔란. ⓒ 이혜승

석양빛 곱고, 개흙처럼 부드럽게 맞이...
지오리포트 소개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주소: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7-12 Tel. (02)332-7525 Fax. (02)332-7526 대표 유만찬
Copyright 2002-2010 Georeport.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eo@georeport.net
지오리포트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므로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